1998년 일어난 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악몽 같은 사건이었다. 높은 실업률과 빈부차 때문에 촉발된 민주화의 열망은 3%의 인구로 70%의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에 대한 증오와 폭력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이런 다수 지배에 대한 열망과 소수의 경제적 지배력이 공존하는 가운데 물리적 폭력을 포함한 인종간 충돌이 일어나는 건 인도네시아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의 에이미 추아 교수는 2003년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그녀의 역저 ‘불타는 세계’에서 필리핀의 중국계 필리핀인들, 라틴 아메리카의 백인들, 러시아의 유대인들 등 경제적 우위를 갖고 있는 소수 인종은 모두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화를 대표하는 다수 집단의 타깃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NHN은 소수 인종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가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 못하는 한국 인터넷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는 것은 맞다.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 중 시가총액기준으로 상위 30대 기업 안에 들어가는 건 14위를 기록하고 있는 NHN밖에 없다. KB금융, LG전자보다도 더 높은 성적이다. 또한 전국민 100명 중 75명이 NHN이 제공하는 대표적인 포털서비스인 네이버를 이용한다. 일명 ‘국민 포털’이다. 인터넷상 정보 접근의 첫 번째 관문이 검색이란 걸 생각해봤을 때 NHN의 경제적 영향력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도 상당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 민주화의 기준을 인터넷 시장에도 적용한다면 포털이, 네이버가, NHN이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다. 과거 인도네시아 등의 사례에서 봤듯이 다수의 지배를 원칙으로 한 민주주의의 틀에서 봤을 때 소수의 경제적 집중이란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이 실패하는 시장에서 아주 일부만 성공했다면, 그 일부가 어떤 편법과 비리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하는 혐의가 가기 쉽다.
그런 맥락에서 포털에 압력을 가하려는 조짐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이미 여권에 속하는 정치 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가 2013년 7월 11일 ‘공정과 상생의 인터넷 산업을 위한 정책 간담회’를 열었고 포털 관계자 및 관련 연구자, 정책 담당자 등이 자신들의 의견을 상호 교환했다. 이 간담회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도 한국 인터넷 시장이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지 못하는 한, 그리고 NHN의 독주가 계속되는 한, NHN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그를 조절하기 위한 정치적 협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NHN을, 네이버를 잡는다고 해서 한국 인터넷이 살아날까. ICT 산업의 새로운 성장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기존의 파이를 나누는 데만 집중하는 건 소모적이다.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되는 걸 막고 기회 균등을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분배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가 미국의 2% 정도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피자 1판을 100명이 나눠갖겠다는 논의가 생산적인 지는 재고할 여지가 있다.
나아가 애초에 NHN이 어떻게 오늘날의 지위에 이르렀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포털이 미움을 받는 주요한 원인인 국내 온라인 뉴스 콘텐츠 유통 구조, 협력업체와의 관계, 스타트업과의 경쟁 부분은 NHN이 지금처럼 성장한 ‘후’에 불거진 이슈들이다. NHN 역시 해묵인 숙제인 공인인증의무제 등 세계 최초, 국내 유일의 규제로 도배된 한국 인터넷 환경에서 자라왔다. 이런 기형적인 인터넷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해서 진화한 종이라고 볼 수 있다. NHN이 괴물이라고 한다면, 그건 한국 인터넷이 만든 괴물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달리 말하면 진정 한국 ICT 산업을 부흥시키고 한국에도 글로벌 ICT 산업에서 새로운 강자를 배출하고자 한다면 기존 제도적 환경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초점을 맞춰야지 개별 기업에 대부분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건 억설이다. 게다가 NHN이 1등 기업인 만큼 도덕적 책임을 지고 한국 인터넷 시장 환경을 개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가 되나,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기업일 뿐이다. 국내 기업과 비교했을 때 시가총액이 얼마이든, NHN은 전세계 검색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구글이 두렵고, 한국에서 모바일 시대가 온 이래 무섭게 성장한 카카오톡이 두렵다. 그들은 사회 정의가 아니라 자사의 생존을 위해 뛰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위협을 가해봤자 돌아오는 건 자기 등껍질 안으로 더 꽁꽁 숨는 NHN 뿐이다.
이런 NHN에 ‘너희도 가두리양식 하지 말고 구글처럼 방목하라’라고 요구하는 건 당위적으로는 적절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한 요구다. NHN과 구글은 다르다. 정보를 수집해서 관리하는 포털과 정보를 검색해서 게시하는 검색 기업간의 차이도 있으나, 다시 강조하건대 그들이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NHN은 인터넷 자유 같은 건 안중에도 두지 않은 제도적 환경에서 빈약한 한국어 콘텐츠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반대로 구글은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인터넷 환경, 풍부한 영어 콘텐츠를 기초로 성장했다. 이들간에 유일한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모두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최대한도까지 성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 뿐이다. 개방성 측면에서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구글의 비전과 실천이지만, 프라이버시 측면에서 봤을 땐 그들 역시 개인의 정보 주권과 국가의 데이터 주권을 넘어서서 그들의 이윤추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한다. 왜 구글의 에릭 슈미츠가 ‘프라이버시는 죽었다’라고 선언했겠는가.
문제의 열쇠는 NHN이, 네이버가 아니라 한국 인터넷의 제도적 환경이다. 게이츠 장학금을 받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동아시아 뉴미디어 환경을 주제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미국인 지인은 2010년에 연구 목적으로 한국에 1년 가까이 체류하는 동안 한국 인터넷 시장을 관찰한 후 이렇게 촌평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인터넷에 영향을 미치고 싶으면 구글에 입사하지만, 한국에서 같은 목적을 가진다면 정부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한국 인터넷 시장에서 NHN이 1위 기업이라고 하지만, 한국 정부와 NHN 중에 어느 쪽이 한국 인터넷 환경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그리고 영향력을 기준으로 책임 소재를 따진다고 한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따지는 것이 먼저일까? 네이버가 먼저 눈에 띄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조종자는 배후에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한양의 궁궐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 여파로 지방의 부정이 나타나는 거라면, 암행어사를 보내 탐관오리를 처벌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잎이 썩으면 잎만 자르면 되지만, 뿌리가 썩었으면 뿌리를 뽑아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포털 규제가 아니라, 그런 각종 인터넷 규제들을 누가, 어떻게, 왜 만들고 있으며, 그 규제가 잘못될 경우 어떠한 책임을 지고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시장의 한 행위자로서 NHN 역시 그들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이 진정 ‘공정’과 ‘상생’을 추구한다면 그들의 도덕성과는 무관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더 현실적인 포털 규제고, 더 장기적인 한국 ICT 산업을 위한 대안이다. NHN에 더 도덕적으로 되라고 요구하지 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더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들라.